서울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누정을 한 눈에

 -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누각과 정자를 소개하는 <서울의 누정> 책자 발간 
 - 조선시대 왕실과 선비의 풍류를 살펴볼 수 있는 누정 문화의 실체를 담고 있는 책
 - 서울에 있었던 누정 88개에 대한 역사와 일화, 문학, 애환 등을 알기 쉽게 서술
 - 각 누정의 사진과 옛 그림 등을 삽입하여 이해하기 쉽게 편집

□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위원장:신형식)는 서울 역사의 대중화를 지향하면서 발간해 온 ‘내고향 서울’ 시리즈 제8권으로《서울의 누정》을 발간하였다.

□ 이번에 발간한《서울의 누정》은 사진과 그림 300여장, 한강과 북악․인왕․남산․낙산에 분포한 누정의 분포지도 등의 이미지 자료를 포함하여 530쪽 분량으로 시민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집필됐다.  

□ 누정은 누각과 정자를 의미한다. 누각은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룻바닥을 땅에서 한층 높게 지은 다락 형태의 집이며, 정자는 경치가 좋은 곳에 자연 경관을 감상하기 위해 지은 목조건물이다. 서울에 현존하는 누정은 궁궐이 경회루를 비롯하여 32개로 가장 많이 남아있고, 한강에는 망원정 등 복원된 것을 포함하여 5개의 누정이 있다. 이 외에 대부분의 누정은 기록으로만 남아있고, 특수한 것으로는 황학정 등 활터 2개와 종루, 탑골공원의 팔각정 등이 있다.  

□ 이 책은 전근대 누정 가운데 서울에 현존하는 것은 물론 기록에서 찾을 수 있는 누정을 포함하여 모두 88개 누정의 역사와 문화, 누정에서 일어난 일화, 누정의 경치를 배경으로 지은 한시와 번역문 등을 수록하였다.   

□ 이 책을 통해서 조선시대 궁궐에서 왕이 정자에 머물며 경치를 즐기면서 읊었던 시문과 왕족의 정자문화 등을 살필 수 있음은 물론 한강과 서울 내사산(북악, 인왕, 남산, 낙산) 자락에 누정을 짓고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고자 했던 사대부들의 선비문화와 풍류문화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 서울에 있었던 누정 가운데 우리의 주목을 끄는 누정을 보면 다음과 같다.
 


  ○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누정은 역시 경복궁의 경회루이다. 조선시대 누정 건물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목조 건축의 백미로 불릴만한 최고의 건축물이다. 오늘날 청와대 영빈관과 같이 조선을 찾는 외국 사신들에게 연회를 베풀던 공식적인 연회장이기도 했다. 유구국의 사신이 조선 최고의 아름다운 곳으로 꼽은 곳이기도 하며, 단종이 세조에게 옥새를 넘겨준 장소도 이곳이고, 1년 12달과 24절기를 비롯한 음양과 주역의 원리는 물론 우주의 유학적 철학을 담고 있는 건물도 경회루이다.  

  ○ 경복궁 안의 향원정은 연꽃 향기가 멀리까지 간다는 의미로 고종이 새로 지은 건청궁의 후원이었다. 작고 아담하며 여성적 느낌이 나는 향원정은 왕실의 사적인 공간이며, 사시사철 각기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곳이다. 1894년 향원정 연못에서 고종 내외가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로 ‘얼음 위를 나는 기술’인 피겨스케이팅을 선보였으며, 우리나라에서 전깃불이 제일 처음 밝혀진 곳도 이곳이다. 또한 향원정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이후 불탄 시신의 잔해가 향원정 연못에 뿌려져 우리의 슬픈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 창덕궁 후원의 부용정은 정조 17년(1793)에 다시 지어진 건물로 연꽃 향기를 머금은 신선의 세상에 놓여있는 누정이다. 정조는 이곳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여 54명의 신하들과 대대적인 연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부용지 연못에서 54명의 신하들과 함께 낚시를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였고, 낚시 후에 잡은 물고기는 다시 연못에 놓아주었다. 한쪽에서는 음악을 연주하며 연못에 배를 띄워 시를 짓기도 하였는데 시를 짓지 못하는 신하는 부용지의 둥근 섬으로 귀양을 보내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위는 규장각 신하들과 함께 소통하며 개혁정치를 추진했던 정조의 이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모습이다. 

  ○ 창덕궁의 존덕정은 후원에 있는 여러 정자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게 지은 건축물이다. 후원에서 제일 가운데 위치하며 천장에는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만 같은 청룡과 황룡이 여의주를 물고 희롱하는 모습이 있고, 궁궐 정자 가운데 유일하게 글귀가 걸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글귀는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로서 ‘만천명월주인옹’은 정조의 호이며 온 세상의 주인이 곧 자신이라는 뜻이다. 이 글은 정조가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기록한 것으로 후원의 대표적인 정자에 걸은 것이다. 이곳에서는 왕들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지을 때 앉아 고민하기도 하고, 성균관 유생들을 불러 시험을 치르기도 했으며, 왕이 한가로이 독서를 즐기던 곳이기도 하다. 

  ○ 창경궁의 함인정은 왕의 어진 정치를 꿈꾸는 곳으로 조선 후기 왕이 편전으로 사용하기도 했으며, 이곳에서 과거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특히 영조는 과거에 합격한 유생들을 이곳에서 만났고, 신하들과 학문을 토론하는 경연을 개최하기도 했다. 나아가 서울 시민들을 함인정으로 불러 물가의 폐단과 경제분야의 고질적인 문제가 무엇인가를 물었고, 농민들을 함인정으로 초대하여 한 해의 농사 작황과 농민의 애로사항을 듣기도 하는 등 영조와 백성 사이에 소통의 공간으로도 활용되었던 곳이다. 

  ○ 한강 동호에 있었던 낙천정은 조선 3대 왕인 태종의 별장이다. 왕위를 세종에게 물려주고 상왕으로 낙천정에 살면서 한강의 풍경과 자양동 일대의 목장을 둘러보면서 말년을 보낸 곳이다. 이곳에서는 태종이 아들 세종과 만나 자주 매사냥을 즐겼고, 한강 두모포에서 낚시하는 모습을 참관하였으며, 세종 1년 대마도를 정벌하기 위해 떠나는 이종무 일행을 격려하고, 승리하고 돌아온 후에는 낙천정에서 연회를 베풀며 노고를 치하한 곳이다.    

  ○ 한강 동호에 있었던 제천정은 조선시대 외교사절의 만찬장으로 인기가 높았던 곳이다. 고려시대 한강정이라 불리다가 세조 2년(1456) 제천정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조선시대 서울에 오는 외교사절들은 한강 정자 가운데 가장 경치가 아름답다고 하는 제천정에서 조선의 대신들과 함께 시문을 주고받으며 경치와 나라의 정세를 논하였으며, 한강에 배를 띄우고 뱃놀이를 하면서 낚시를 즐기기도 하였다. 이 외에 왕이 이 정자에서 군사훈련을 참관하기도 하였고, 퇴계 이황이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할 때 도성의 선비들이 퇴계를 만류하면서 3일간이나 석별의 정을 나누었던 곳이기도 하다. 1624년 이괄의 난 때는 인조가 피난하면서 날이 어두워 이 정자에 불을 질러 그 불빛에 의지하여 한강을 건넜다고 한다.

  ○ 이 외에도 동호 일대에는 수양대군이 왕권을 꿈꾸던 창회정, 푸른 말 목장을 바라볼 수 있었던 화양정, 조대비가 탄생한 쌍호정, 규장각 관원들이 합법적으로 놀 수 있었던 유하정, 강가의 갈매기와 벗하며 지낸다는 한명회의 압구정, 강과 하늘이 하나의 빛을 이룬다는 천일정, 꿈에 본 자리에 정자를 세운 숙몽정 등 다양한 여러 정자가 있었다. 
   
  ○ 용산강 일대에 있었던 삼호정은 서울에서는 유일하게 여류시인들이 모여 시문을 지으면서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금앵(錦鶯), 김운초(金雲楚), 경산(瓊山), 박죽서(朴竹西), 경춘(瓊春) 등은 이 정자를 무대로 삼호정시단(三湖亭詩壇)을 만들고 자주 만나기도 하고 혹은 편지를 통해 시를 주고받으며 조선 후기 여성들의 한시문학을 꽃피운 곳이다. 이들은 각각 시문집을 낼 정도로 활발한 동인활동을 하였다. 조선 후기 여성들의 사회적 인식이나 의식이 상당 부분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공간이며 여성 문학사에서도 매우 의미가 깊은 곳이다.  

  ○ 이 외에도 용산강 일대에는 조선 선비의 효심을 담고 있는 효사정, 임진왜란 때 강화회담의 현장이었던 심원정, 한강의 달구경으로 유명하여 정약용이 망년회를 즐기던 월파정, 정조의 효심을 간직한 용양봉저정, 정조와 이복동생 은언군의 애틋한 만남이 있었던 읍청루, 고려 말 용산의 경치를 즐기던 추흥정 등 여러 정자가 있었다. 

  ○ 서호인 합정동 양화진 인근의 망원정은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이 처음 지었으며,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려 세종이 희우정(喜雨亭)이라 이름을 하사하였다. 이후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이 이 정자를 고치고 멀리까지 경치를 즐길 수 있다는 의미의 망원정으로 바꾸었다. 이 정자는 조선시대 외교사절들이 제천정과 함께 자주 방문했던 곳이며, 왕이 참관하는 한강에서의 군사훈련도 자주 개최되었다. 
 
  ○ 이 외에도 서호 일대에는 영화롭게 복을 누리며 살라는 의미의 영복정, 안평대군이 선비들과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기던 담담정, 고종 때의 유명한 내시 나익진의 별장인 영은정, 을사오적 가운데 한 사람인 박제순의 별장 평초정, 효종의 부마인 금평위 정필성의 창랑정, 선조 때의 학자인 원사 이정구의 보만정 등 여러 정자가 있었다. 이른바 서호 팔경을 감상할 수 있는 한강 북쪽의 언덕위에 수많은 정자가 존재하였으며, 한강가에서는 가장 많은 정자가 있었으나 대부분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 한강의 양천일대에는 이태백의 시문을 따서 지은 이수정, 문학과 예술이 만났던 곳 소악루, 궁산 서쪽 기슭에 효령대군의 별장이었던 춘초정, 중종 때의 문신 심정이 지은 소요정, 강서구 염창동 두미암에 김말손의 별장인 영벽정 등 다양한 정자들이 있었다. 특히 소악루는 겸재 정선이 양천현감으로 있을 때 소악루에 올라 양천팔경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그린 〈양천팔경첩〉이 남아있어 유명하다. 지금의 소악루는 1994년 복원한 것이며, 이곳에서는 남산과 인왕산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 서울의 북악과 인왕산 일대에 있었던 누정으로는 세도정치의 핵심 인물 김조순의 별장인 옥호정, 인조반정의 정당성을 의미하는 세검정, 모든 잡념을 떨쳐내고 홀로 즐긴다는 독락정, 연산군의 놀이터이자 수석으로 유명한 탕춘대, 개화기 젊은 선비들이 격렬하게 토론을 벌인 취운정과 백록동정자, 흥선대원군이 안동김씨에게서 빼앗은 석파정, 충절에서 세도의 상징으로 변한 태고정, 조선시대 이별의 장소인 천연정, 세가지 분야의 뛰어난 인물이 만난 곳 삼승정 등의 누정이 있었다. 

  ○ 서울시 남산 일대에는 부귀 영화를 언제든 버릴 수 있다는 귀록정, 남산 팔경을 바라보며 경치를 즐긴 홍엽루, 일본과 내정개혁안을 논의한 현장인 노인정, 서울에서 제일 맛있는 샘물을 가진 녹천정, 회나무 두 그루에서 비롯된 쌍회정, 중국의 악양루와도 바꾸지 않은 율정, 동래정씨 모임 장소로 지은 화수루 등이 있다. 남산 일대에는 대부분 북쪽 기슭에 누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 서울시 낙산 기슭에는 봉림대군과 인평대군 형제의 우애를 보여주는 조양루와 석양루, 단종과 정순왕후의 애환이 서린 영빈정, 낙산 아래 배꽃 속에 지은 이화정, 낙산 잣나무골에 세운 백림정 등이 있다. 특히 조양루와 석양루는 서로 마주보고 위치하여 한 사람은 왕위에 올라 효종이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대군의 신분으로 살면서 서로 우애있게 삶을 살았던 누정으로서 귀감이 되는 곳이다.   

  ○ 한편 서울에는 선비들과 무인들, 그리고 일반 백성들이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 활을 쏘았던 장소가 많았다. 이곳에는 정자를 세워 활쏘기 훈련과 함께 활쏘기 연회를 베풀기도 하였다. 한국 궁술의 명맥을 이어 온 황학정이 아직도 인왕산 자락에 남아 있으며, 남산 자락에는 석호정이 남아있다. 이 외에도 인왕산 일대에는 서촌오사정이라 불리는 인왕산의 백호정, 필운동의 등과정, 옥인동의 등룡정, 사직동의 대송정, 삼청동의 운룡정 등이 있었고, 남산에는 병자호란 때 치욕을 갚기 위해 만든 재산루가 있었다. 또한 서촌오사정에 버금가는 활터로 남산의 석호정, 가회동의 일가정, 자지동의 청룡정, 천연동의 서호정, 마포의 화수정을 꼽았다. 이 외에도 도성 안과 궁궐 안 등에 활터가 산재해 있었다.


□ 이 책은 서울도서관 북카페(2133-0305)와 정부간행물센터에서 한정판으로 구매할 수 있고, 서울시내 시립도서관을 비롯한 공공도서관에서 시민들이 자료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또한 3월 이후에는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http//culture.seoul.go.kr)를 통해서 전자책으로 열람할 수도 있다. 가격은 10,000원. 문의 : 413-9539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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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울컬처노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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