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ory 190

2013/1/
< 연극 거기



강신일, 이성민, 송선미, 정석용, 민복기 등등 명품 배우들의 초호화 캐스팅으로 이름을 날린 '연극 거기'. 서울시 문화블로그 문화이벤트 당첨으로 관람하게 되었다. 1월 10일 8시 공연의 출연배우들은 김중기, 민복기, 정석용, 김소진, 김훈만 배우님. 정석용 씨를 빼면 우리가 브라운관에서 익히 보던 배우들은 아니었지만, 기대를 하며 관람. 

 
 '연극 거기'는 내가 여태 봐온 연극 중 최고의 연극이다. 올해 연극계에 처음 입문해서 관람한 연극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연극 거기'를 보며 그래 바로 이게 진짜 연극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강원도 촌구석의 한 술집에서 그네들이 하는 수다가 한 편의 연극으로 탄생하다니. 극 중 배경이 바뀌지도 않고, 그들의 배역이 바뀌지도 않고,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액션으로 나를 웃기려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저 나는 그들이 술을 마시며 떠는 수다를 몰래 훔쳐보는 것뿐인데, 그게 그대로 '극'이 되었다. 드라마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을 고대로 보는 기분이랄까? 아니, 그냥 진짜 어느 호프집에 앉아 옆 테이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를 쫑긋 세우고 몰래 듣는 그런 기분이었다.
 
 
 연극 거기. 거기에 그녀가 왔다.
강원도 촌구석의 한 술집. 호형호제하는 막역한 동네 주민들이 술집에 모였다. 51살이 되도록 장가를 못 간 노총각 장우, 젊은 나이에 땅 부자이면서 술집을 운영하는 병도, 순박한 블랙잭의 달인 노총각 진수, 돈을 굴릴 줄 아는 유부남 '실바' 춘발, 그리고 춘발에게서 집을 사고 그에게 동네 이곳저곳 소개받다가 거기까지 오게 된 정. 이렇게 다섯 사람이 술집의 한 테이블이 모여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구수한 강원도 사투리로 대화한다. 익숙지 않은 사투리라 처음엔 귀에 잘 안 들어왔지만 이내 적응이 되었다. 누구누구의 근황을 묻는 이야기부터, 동네 개발과 땅값 이야기, 강원 카지노에 갔다가 돈 딴 이야기, 남자들 특유의 허세부터 자리에 없는 누군가의 흉을 보며 농을 치기도 한다.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막역한 동네 친구들끼리 만나면 흔히 하는 이야기들. 맥주를 마시며 ( 뒤에서 비춘 빛에, 병맥주의 거품이 보이기도 했다.) 그네들 사는 이야기를 담담하고 재미있게 풀어나갔다. 동네에 새로 온 여자가 술집에 들린다는 말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혼자 쑥스럽게 웃는 장면에선 웃음을 줬고, 여자 앞에서 부리는 남정네들 특유의 허세와 배려. 술이 들어갈수록 커지는 목소리와 말이 잘 안 나올 때 더듬거리며 말하는 투는 진짜 내 주변 남자들의 모습을 보는 기분도 들었다.  


 배경은 술집 하나. 간간이 화장실을 가며 누군가가 퇴장했다 다시 들어오는 것 외에는 다섯 사람이 함께 있다. 배경음악도 거의 없다. 대부분 앉아서 연기한다. 오직 표정 연기와 대사, 그리고 디테일한 생활연기가 전부인데도 웃겼다가 울렸다 하며 몰입하게 한다. 건배하다 테이블의 물을 엎지르고 그걸 재빨리 닦아내는 디테일한 연기,(실수가 아니라 연기란다.) 갓 이사 와서 처음 동네 사람들을 처음 소개받고 어색하게 웃고 이야기를 경청하는 '정'역할의 김소진 배우의 연기도 정말 현실적이었다. 낯선 사람들을 만났을 때 내 모습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 외 정말 감쪽같은 생활연기가 빛을 발하는 연극이었다.
 

 배경이 바뀌지 않고, 오직 그들의 수다, 대화만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건 영화 '맨프럼어스'를 생각나게 했다. 만 4천 년 동안 죽지 않고 살아온 한 남자의 일생 이야기를 오직 여러 분야의 교수들이 집에서 수다 떨 듯 대화로만 풀어나가는 영화인데, 그와 비슷한 느낌의 연극이랄까? 연극 거기의 노총각들은 단지 동네에 얽힌 '귀신'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도 남자 넷과 여자 한 명의 지난 삶들을 엿볼 수 있었다. 연극에서 딱 하나 달라지는 게 있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어두워지는 테이블 뒤 창가의 풍경이랄까? 마지막 극이 끝나고 반짝거리는 별빛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그냥 평범한 귀신이야기가 아니다. 그 이야기 속에는 정든 고향을 떠나 타지생활을 하게 만든 이야기도 있고, 그들의 외로움과 서글픔도 담겨있다. 먼저 떠난 친구를 향한 그리움. 잡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아쉬움을 술 한잔과 웃음으로 시원하게 날려버리는 그들의 이야기이다. 갓 이사 온 여자를 놀리면서 시작된 귀신이야기가, 사실은 그 여자의 아픈 과거이고 상처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사실은 꿈이었을 거라며 서투른 위로를 건네며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모습을 보며 관객들은 진정으로 힐링을 받는다.


 
 ‘진수’역의 정석용 씨는 정말 술에 취한 듯 제대로 된 취중연기를 보여주셨다. 웃음 대부분도 정석용 씨를 통했다. 감초 조연으로, 생활연기의 달인으로 정평이 난 골든타임 트리오 이성민, 송선미, 정석용 님의 연기와 강신일님의 연기 조합은 어땠을까 기대가 되었다. 26년에서 비리청탁을 받는 그 사람의 비서실장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신 민복기님 특유의 허세기 있는 연기를 이성민 씨가 했다면? 정말 노총각 같은 몸매에 노총각 같은 옷을 입고 큰형님 연기를 보여주신 김중기 씨 역을 강신일 님이 했다면??? 비록 대부분 막공을 하시고 하차하셨지만 다른 배우들로 극을 볼 수 있다면 꼭 다시 한번 보고 싶다.




 


Seoul Story NO.190


서울시민 이경미님이 보내주신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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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울컬처노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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